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문단 편집) == 개요 == [[로마 제국]]의 세 번째 세습 왕조.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되어 단절된 [[플라비우스 왕조]]의 뒤를 이어 서기 96년부터 192년까지 로마 제국을 통치했다. 보다 세부적으로 '네르바-트라야누스 왕조'와 '안토니누스 왕조'로 나누는 경우도 간혹 있다.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루키우스 베루스]], [[콤모두스]]가 이 왕조에 속하는 황제들이었으며, 여기서 [[루키우스 베루스]]와 [[콤모두스]]만 빼면 그 유명한 '''[[오현제]]'''였다. 콤모두스를 제외하면 모두 [[양자(가족)|양자]] 관계로 제위가 계승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의 황제들을 '''양자 황제'''(Adoptive Emperors)라고 부르기도 한다. 혈연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실력자를 양자로 맞이하여 제위를 계승했던 것이 이 시기 로마를 최전성기로 이끈 원동력으로 꼽히곤 한다.[* 다만 이게 정말로 중요한 원동력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 이전 로마 역사에서도 공화정, 제정 시대 중 [[플라비우스 왕조]] 정도를 제외하면 양자 관계로 권력이 세습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카이사르]]부터가 [[아우구스투스]]를 양자로 입양했으며, 아우구스투스 역시 [[티베리우스]]를 양자로 입양했다. 그리고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는 모두 훌륭하게 통치를 수행해냈다. 또한 오현제 시기 황제랑 같은 해에 집정관이 된 인물들을 보면 대부분 황제와 인척, 친척이다. 오현제도 우리랑 같은 사람이었으며 같은 인물이면 측근, 같은 측근이면 친척, 같은 친척이면 가족을 더 선호하였다. ][* 그리고 사실 양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전 황제들은 모두 친자가 없었다. 즉 제위를 세습하고 싶어도 세습할 수가 없었던 것. 하지만 양자가 아니더라도 족보를 펼쳐보면 네르바 빼고는 직•간접적으로 다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로마법상의 입양, 로마 귀족들의 상속, 입양, 근친혼 관행에 따라 트라야누스 일가를 중심으로 하나의 새로운 가문을 만들어 제위를 세습했기 때문에, 오현제가 의도적인 이유로 입양제도를 이용해 실력자를 채택한 다음 제위를 이었다고 보면 안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